5000만원 빌려 자동차 살 때 경쟁사보다 253만원 더 내야
"차량 출고 어렵다"며 협박… 어쩔 수 없이 계약하게 해
회사원 박철수(가명)씨는 지난달 쏘나타 차량을 할부로 구입하러 현대차 대리점에 갔다가 영업사원으로부터 "할부를 현대캐피탈로 계약하지 않으면 차량 출고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박씨는 "친구가 일하는 다른 금융회사의 자동차 할부 상품은 현대캐피탈보다 200만원 이상 저렴하고, 친구의 실적도 올려줄 수 있었지만 차량 출고가 힘들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현대캐피탈과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의 78%(올해 1~5월 기준)를 차지하는 시장 독점적 지위를 이용, 차량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할부·리스 등 자동차 금융 사업을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에 몰아주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자동차가 지분 56.5%를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씨가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4일 현대·기아차 대리점과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영업사원들은 자동차를 할부 또는 리스로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현대캐피탈과 계약할 것을 강하게 권유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현대차 대리점 영업사원은 "현대캐피탈이 아닌 다른 금융사를 이용하면 할부 계약 자체가 늦어지고 나중에 차량 출고도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한 기아차 대리점에서도 비슷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수입차를 구입한 C씨는 "지난 6월 친구가 지점장으로 있는 할부금융사를 통해 현대차 에쿠스를 리스로 구입하려 했으나 한 달이 넘도록 차가 출고되지 않아 계약을 해지하고 벤츠 S클래스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가 자동차 할부·리스를 현대캐피탈에 몰아주는 바람에 소비자들은 금융 상품 선택권을 제한받고 있다. 예를 들어 옵션(편의장치 선택품목)을 포함해 가격이 6002만원인 현대차 제네시스 BH330 럭셔리VIP팩 모델을 36개월 할부로 구입할 경우 현대캐피탈은 A캐피탈보다 할부 금리가 높고, '금융 수수료'라는 명목의 부대 비용도 비싸다. 현대캐피탈 이용 고객은 은행 계열의 A캐피탈을 이용할 때보다 253만원을 더 지불해야 한다. 〈그래픽 참조〉
- ▲ 2012년형 제네시스.
현대·기아차는 지난 4월 현대캐피탈 해킹에 따른 고객 정보 유출 사고 이후 할부금융 소비자들이 현대캐피탈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막기 위해 자동차 판매 과정에서 현대캐피탈 지원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현대·기아차가 거래상 일반 소비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상황에서 특정 금융사의 할부 상품을 권유하는 것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는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현대캐피탈을 권유하는 것은 일부 대리점에서 발생한 일일 뿐, 본사 차원의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현대캐피탈은 "할부 금리가 지금은 경쟁사보다 높지만 비수기에는 금리가 낮은 할부 상품을 출시하므로 연평균 금리는 높지 않은 편"이라고 해명했다.
작성일 : 11-07-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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